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/대남 도발 (문단 편집) === 1940년대 === 1945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혼란한 [[해방]]공간의 상황은 곧 남북교전으로 이어졌다. 북한은 북한대로 내부정리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"이대로 남조선 [[반동]]들을 맛깔나게 후려치면 우루루 허물어지겠지?" 라고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국지전을 감행했다. 훗날 이러한 상황은 [[6.25 전쟁]] 연구가들에게 '''교전확대설'''의 떡밥을 제공하게 된다. 이러한 교전확대설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. '''다만 교전이 확대된 것이 북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남침으로 확대된 것.''' 이러한 일련의 교전들은 사실 북한이 신생 [[조선인민군]]의 교리와 전투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부단한 시도였다고 보여지기도 한다. 교전이 하도 많았기 때문에 [[신문]]지상에 안 실린 것도 많았다고 한다. 또한 1948년 이후부터는 남한에 정치적인 침투를 위해 공작원을 보내기 시작한다. 설령 교전확대설이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[[북한]]의 기습남침은 명백하게 규정된 사실이다. 위의 내용들은 [[브루스 커밍스]]의 한국전쟁의 기원 같은 곳에서나온 것으로 보인다. [[소련]]이 해체되면서 당시 소련의 비밀 문서가 해금되었는데 여기에 나온 비밀문서 중 6.25와 관련된 비밀 문서가 있다. 비밀 문서에는 6.25의 원인이 북한의 기습 남침이라는 것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. ---- * 1948년 * [[천연가스 동결|북한의 일방적인 단전]](5. 14.): 뭔 사건인가 하겠지만 남한의 총선거에 화가 난 북한이 남한으로의 송전을 끊은 사건이다.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겠지만 당시엔 북한이 남한으로 가는 전기의 70%를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. 그 당시 큰 발전소들은 대다수가 북한에 있었다. 대표적으로 압록강에 있던 수풍 수력발전소.~~이제는 그 발전소들을 못 굴려서 역관광을 당하고 있지~~ * [[영월군|영월]][[발전소]] 폭파기도(11. 26.): 남한의 전기를 끊으려고 했다가 국군에 의해 저지된 사건이다. * [[서부전선]] 교전(12. 2.) ---- * 1949년 * [[개성시|개성]] 인근 교전(2. 6.): 북한군이 개성 송악산 근처에 군인들을 보내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.[* 이때는 위도 38선을 따라 개성이 남한의 영토였다. 이후 전쟁이 끝나게 되면서 북한의 영토로 편입된다.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가 [[옹진반도|황해도의 일부]]를 갖고 북한이 속초를 갖고 있었다.] * [[개성 송악산 전투]](5. 4.): 개성 내습사건이라고도 한다. 북한군이 개성 바로 근처까지 진입해서 [[박격포]] 등의 화기로 시내에까지 포격을 자행한 사건이다. 이때 [[육탄10용사]] 사건이 일어났다. * [[포천시|포천]] 전투(6. 12.) * [[옹진-은파산 전투]](5. 21. ~ 11. 15.) * 양양 돌입 사건(7. 4.) - 한국군의 뼈아픈 실책으로 큰 피해를 입은 사건. 북한에서는 제2차 고산봉 전투라고 부르고, 남한에서는 제2차 기사문리 전투라고도 부른다. [[송요찬]] 항목 참조. * [[춘천시|춘천]] 682고지 전투(8. 6. ~ 8. 20.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